왕과 사는 남자와 휴민트는 노리는 감정이 전혀 달라서, 한 편만 고르려면 그 차이부터 알고 고르시는 편이 좋습니다. 2026년 설 연휴 극장가를 나눠 가질 것으로 예상되었던 두 영화는 유해진·박지훈의 왕과 사는 남자(사극 코미디)와 류승완·조인성·박정민의 휴민트(첩보 액션)였습니다. 출연진만 보면 어느 쪽이 이겨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뚜껑을 열어 보니 1444만 대 197만, 7배가 넘는 차이가 났습니다.
그렇다고 "한쪽이 망했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두 영화가 왜 이렇게 다른 성적을 냈는지 살펴보면, 그 안에 각 작품의 매력과 한계가 모두 담겨 있습니다.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두 영화의 분위기가 꽤 다르니, 취향에 따라 고르시면 됩니다.
이런 분께 도움이 됩니다- 설 연휴에 봐야 할 영화를 아직 고르지 못한 사람
- 왕과 사는 남자/휴민트 중 하나만 볼 시간이 있는 사람
- 흥행 격차가 왜 이렇게 벌어졌는지 궁금한 사람
※ 핵심 줄거리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 2026년 3월 24일 기준, KOBIS·씨네21·로튼토마토 종합
흥미로운 점은 전문가 평점은 오히려 휴민트가 더 높다는 것입니다. 씨네21 전문가 평점에서 휴민트는 7.17점을 받았습니다. 왕과 사는 남자는 6.5점입니다. 그런데 관객 평점에서는 왕과 사는 남자가 크게 앞섭니다. 관객이 느낀 만족도와 전문가의 평가가 정반대로 엇갈렸습니다.
왕과 사는 남자는 설 연휴보다 일주일 먼저 개봉하는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2월 4일에 개봉해 연휴 전까지 입소문을 쌓았고, 관객들이 "그 영화 괜찮더라"는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할 즈음 설 연휴가 찾아왔습니다. 시기가 정확히 맞아떨어진 것입니다.
반면 휴민트는 설 직전인 2월 11일에 개봉했습니다. 입소문을 쌓을 시간이 부족했고, 이미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 흐름이 굳어진 뒤에 경쟁해야 했습니다. 관객 입장에서는 "이미 검증된 영화"와 "아직 평가가 갈리는 영화" 가운데 앞쪽을 고르기 쉽습니다. 특히 가족 단위 관람이 많은 설 연휴에는 안전한 선택에 관객이 몰리는 경향이 더 강해집니다.
개봉 시기 하나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왕과 사는 남자가 먼저 움직여 입소문을 선점한 것은 분명합니다.
왕과 사는 남자의 숨은 무기는 폭넓은 관객층이었습니다. 유해진의 코미디, 박지훈의 눈물, 단종이라는 역사 소재까지, 10대부터 60대까지 저마다 끌리는 지점이 있었습니다. 가족이 함께 보기에 무난했고 설 연휴라는 시기와도 잘 맞았습니다. 웃음으로 시작해 감동으로 끝나는 구성도 입소문에 유리했습니다.
반면 휴민트는 처음부터 관객층이 좁았습니다. 첩보 액션이라는 장르 자체가 성인 남성 관객에게 쏠리는 편이고, 북한 식당 종업원이나 블라디보스토크 현지 작전 같은 소재는 흥미를 끄는 한편 가족이 함께 보기에는 무겁게 느껴집니다. 개봉 초반 일부 장면의 묘사를 두고 논란이 일면서 여성 관객이 빠져나간 것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결국 영화의 완성도와 별개로, "누가 함께 볼 수 있는 영화인가"에서 차이가 벌어진 것입니다.
흥행 성적이 곧 작품의 수준은 아닙니다. 두 영화는 노리는 감정이 완전히 다르니, 취향에 맞는 쪽을 고르시는 편이 좋습니다.
왕과 사는 남자가 잘 맞는 분- 웃다가 갑자기 눈물이 나는 영화를 좋아하는 분
- 가족이나 연인과 극장에 갈 예정인 분
- 역사 드라마를 편하게 즐기는 분
- 유해진의 코미디를 좋아하는 분
휴민트가 잘 맞는 분- 본 시리즈, 베를린, 공작 같은 첩보물을 좋아하는 분
- 액션의 밀도와 긴장감을 중요하게 여기는 분
- 조인성·박정민이 맞서는 구도에 끌리는 분
- 관객 수보다 장르 영화의 완성도에 관심 있는 분
극장에서의 경험으로 보면, 왕과 사는 남자는 객석에서 다 함께 웃고 우는 맛이 있고, 휴민트는 어두운 객석에서 홀로 숨죽이며 보는 맛이 있습니다. 두 영화 모두 극장에서 볼 이유가 있지만, 그 이유는 서로 다릅니다.
왕과 사는 남자에서 꼼꼼한 역사 고증이나 진지한 정통 사극을 기대하면 맞지 않습니다. 단종의 비극을 소재로 삼았지만, 코미디와 감정 드라마에 무게를 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실제 역사를 꼼꼼히 따지는 사극 팬이라면 허구적인 설정이 거슬릴 수 있고, 씨네21 전문가 평점 6.5점도 그런 아쉬움을 보여 줍니다.
휴민트에서 베테랑 시리즈 같은 시원한 통쾌함을 기대하면 전혀 다른 영화를 만나게 됩니다. 첩보물의 문법을 따라 속도감보다 긴장감으로 끌고 가는 영화입니다. 후반부 액션은 류승완 감독답지만, 중반까지 이어지는 세계관 설명은 무겁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제작비 235억 원에 손익분기점이 400만이었는데 197만에서 멈춘 것은, 장르의 한계와 개봉 시기가 겹친 결과입니다.